.천원짜리 사과 한 봉지와 립밤



월요일은 아르바이트에 가는 날이다. 봄에 시작하여 가을까지 해 온 일이다.  알바처는 우리 집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다 가는 버스가 하나뿐인데다가, 30분이나 타고가야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어느날 꽃봉우리가 생기는 일처럼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는 일 처럼 순식간에 일어난다 나는 채 청소도 덜 끝낸 채, 갑자기 방문한 손님에게 문을 연다.  ' 안녕! 근처 지나가다가 한 번 와봤어  우리 진짜 오랜만이지? ' 반갑게 인사하는 손님에게 당혹스러움을 숨기고  ' 와 진짜 오랜만이네 이게 얼마만이야? ' 하고 달갑게 맞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이 가을로 바뀐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그 미묘하게 쌀쌀해진 아침공기와 겨울을 날 채비를 하는 나뭇잎들을 보지 못한 채 어느순간 갑자기 추워진 하루를 맞이 하고 그날 저녁 급하게 긴 팔옷들을 꺼내입어야 하겠지만, 카페 아르바이트의 장점은 손님들의 메뉴에서 계절이 변해감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저녁시간에만 열그릇도 넘게 나가던 빙수가 하루에 한 두개가 나가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고구마라떼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 아, 가을이 오긴 왔나보구나. 평소보다는 더 일찍히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게된다

  겨울이 찾아오는 것은 아주 느릿하다 소위 말하는 겨울인 척 하는 가을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은 너무 추워 겨울인가 하면 또 점심 때가 되면 초여름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따스하다. 게다가 손님들이 주문하는 메뉴 또한 가을과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겨울이 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기 일 수 이다.

하지만 이번주 월요일은 정말 겨울이 온 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벌써 롱패딩을 사기에는 너무 오바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미뤄뒀던 주문을 오늘 넣어야 할 지 잠시 고민이 될 정도였다. 하도 바람이 차가워 눈싸라기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가기전 옷장에 넣어두었던 기모가 두둑한 잠바를 꺼내입었다.

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서는 사거리에 있는 큰 힁단보도를 하나 지나가야 한다. 사거리의 모퉁이에는 때때로 늙은 할머니가 빨간 다라이(바구니)에 나물과 고둥, 말린 도라지들을 담아 팔기도 하고  군밤장수가 트럭에 잔뜩 밤과 밤 굽는 기계를 실고 팔기도 했다 파는 밤들은 어찌 그렇게 맛깔나게 카랴맬 색깔이 나도록 굽는 지! 그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에 어쩔수없이 한봉지씩 사먹곤했다

 하지만 가장 자주 오는 사람은 오십은 족히 되셨을 것 같은 수염이 거뭇뭇하게 난 과일 장수 아저씨였다. 말이 과일 장수 아저씨지 파는 건 사과뿐이지만 말이다. 한 바구니에 삼천원에 사과들은 팔려나갔다 항상 바구니는 비어있을 줄 몰랐다. 그 것이 내놓는 족족 불티나게 사과가 팔려 계속 바구니를 채워야 했기 때문인지 하나도 팔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그 곳에 있는 시간은 힁단보도를 기다리는 시간, 길어야 3분남짓이기 때문이다 과일장수는 6시가 정도가 되면 아직 팔리지 않은 사과를 다시 박스에 넣어 집에 들어갈 채비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과들이 팔리는 것을 보고 또 나가는 길에 그 사과들이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곤했다

이 날은 무슨 날이였는지 꼭 남은 사과들을 팔기라도 했어야 했는지,  6시가 훌쩍 넘어 6시 20분을 넘어가는 중이였는데, 왠일인지 과일장수는 아직까지도 사과를 팔고있었다. 평소의 빨간 다라이는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아도 너무 좋지 않았다. 오늘은 근 한달 중 가장 추운 날이였고 하늘은 먹먹하고 바람은 세워둔 현수막을 픽픽 쓰러뜨리고있는 날이였다 장수의 속사정을 모르는 나는  왜 아직까지 사과들을 팔고 있나 싶었다

평소의 뻘건 다라이 대신 하얀 봉지들이 줄줄이 줄을 섰다. 족히 스무개는 되보였다. 박스를 찢어 만든 임시 가격표에는 매직으로 ' 쥬스용 3000원(빗금) 천원 ' 이라고 써져있었다

쥬스용? 이제 끝물인 사과들을 파는 가 싶었다. 사과 사가세요, 그렇지 않아도 조그만 목소리는 바람과 경적소리에 나오는 족족 묻쳐버렸다. 힁단보도 신호는 내가 오자마자 바뀌었었던 건 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구석에 시선이  자꾸 갔다 얇은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린채 천원짜리 사과 봉지를 파는 아저씨. 아직 앞에도 줄줄 늘어져있는 봉지는 과일 장수의 뒤에도 쌓여있었다

 저걸 다 팔아야 집에 갈 수 있는 걸까?

사실 저렇게 많은 사과가 천원이라니. 암만 끝물인 사과라도 싼 건 싼 것이다. 그 와중에 손익계산까지 하고있다 이내 까짓것 천원인데 한봉지 사지 뭐, 반은 요구르트랑 갈아먹고 남은 건 잼이라도 만들지 아직까지 내가 그 사과 봉지를 사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 추운 날에 몇 푼 안되는 사과봉지를 팔고있는 과일장수 아저씨에 묘한 연민이 들어서 인지  한봉지에 천원이라는 가격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이거 한 봉지에 천원이예요?
네 그렇습니다
네 한봉지 주세요.

얇은 천원짜리 지폐 한 장과 묵직한 사과 한 봉지는 너무 불공평한 거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다이아몬드와 옥수수를 교환하자고 말하던 어떤 게임 속 간디처럼.

하지만 요즘 사회가 그러듯 무게가 가벼울 수록 더 값어치가 있지 않은가? 동전보다는 지폐, 지폐뭉치보다는 수표. 오고가는 반찬통보다는 백화점상품권처럼.

괜히 두 손이 묵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붕어빵봉지, 군밤봉지 과일봉지들은 괜히 사람마음을 들뜨게 하는 그런 것이 있다. 그 것들은 맛보다는 집에 있는 가족들이 먼저 떠오르게 만드는 요상한 능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는 사과를 나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무릎에 사과봉지를 올려놓고 봉지 째로 끌어 안았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인지 코가 먹먹한 가운데, 겨울 특유의 시멀건 냄새와 정류장 옆에 있는 호프 집에서 나는 안주와 술냄새, 정류장 옆 쓰레기 통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들 가운데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초겨울의 먹먹함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향기.

나는 처으에는 이 향기의 근원지가 갑자기 건조해진 날씨탓에 다 부르튼 입술에 바르고 나온 사과 립밤의 향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공장에서 만들어 나왔다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냄새였다 설마, 하고 나는 봉지에 코를 들이밀었다

설마 천원짜리 끝물 사과들에게서 이렇게 좋은 향기가?

아!

그리고 내 코를 감싸는 사과향기! 단내. 풋사과의 향기. 껍질에서 부터 그 것들은 나도 사과라고, 끝물이든 말든, 내가 얼마짜리이든 나는 사과라고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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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감성의 잔재

삶의 고락은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늘 함께 있습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사람은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고 또 인생은 새끼줄마냥 배배 꼬여있어 영원한 슬픔도 행복도 존재하지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춥기도하다 따뜻하기도 하고 미워하다가도 좋아하는 굴레들이 봄이오고 가을이 오듯 당연스레 반복됩니다. 우리는 주어지는 것들을 즐기며 때로는 슬퍼하고 가끔 지칠 때면 감정을 조용히 풀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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